<ALL ABOUT DOGS> 5










보호소 일기

햇볕이 쨍쨍한 어느 여름 반짝반짝 빛나는 털복숭이 밤비를 처음 만났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이모네집 마당에 돌아다니던 아이를 집에 데려와 같이 살게되었다. 하지만 배변을 못 가린다는 이유로 몇개월 함께 있지도 못하고 다른분께 보내졌다. 나는 몇날 몇일을 울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부모님께서 작고 하얀 말티즈 두마리를 입양해오셨다. 설희와 왕자. 용돈을 받으면 아이들 간식과 영양제를 사는데 모두 다 써버렸고, 산책, 목욕, 머리묶이기 등등 모든 것을 해주고 더 해주고 싶어했다. 16살 어느 등교하는 길에 혼자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발견했다. 집에는 데려갈 형편이 안됐고 경비아저씨, 친구들에게 부탁하여 하루씩이라도 그 아이를 재울곳을 찾았다. 그리고 보호소를 알아내 친구와 함께 포천시청까지 버스를 타고 아이를 보냈다.

그때는 몰랐다. 그곳에 보내면 가족은 없지만 많은 친구들이 있고, 사료도 먹을수 있고 잠 잘 곳이 있는 나름 바깥보다는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 아이를 보러 한두번 봉사도 가고, 그 뒤 몇 마리 구조한 아이들도 그 곳으로 보냈다. 이것을 시작으로 보호소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보호소를 다니면 다닐수록 현실을 알게 되었다. 그곳은 너무 처참했다. 추운 겨울 사료후원이 다 끊겨 먹을 것이 전혀 없던 때, 도너츠 크게 세봉다리를 후원 받았다. 개체수가 워낙 많아 일일이 줄 수 없어 탁자위에 도너츠를 올려놓고 조각조각 손으로 잘라 집어던졌다. 던져지는 도너츠를 서로 먹겠다며 난리였다. 그 많은 도너츠를 다 던지고 나니 도너츠를 사수하겠다고 달려들던 아이들은 조금씩 흩어졌다. 뒷정리를 하는 도중 탁자 밑에 쓰러져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도너츠 한조각을 먹으려다 급체해서 죽은 것이다.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다. 조금만 더 신경써서 도너츠를 줬더라면.. 도너츠 한조각이 뭐길래 목숨까지 잃게 만들었을까.. 몇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보호소에서 태어난지 2주밖에 안된 새끼. 새끼는 보통 케이지안에 어미와 함께 있는다. 케이지 바깥에는 개들이 돌아다닌다. 어느날은 새끼 중 한마리가 케이지 철장 틈 사이로 코를 내밀고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봉사자가 소리를 질렀다. 얘 어떡하냐구.. 뒤를 돌아보니 검정색의 손바닥만한 아이에게서 피가 철철 나고 있었다. 밖에 돌아다니던 개가 새끼의 코를 물어 뜯은것이다. 코가 그냥 떨어져나갔다. 바로 병원으로 이송하고, 인공적으로 콧구멍을 만들어줬다. 다행히 목숨은 살렸지만, 그 아이는 자랄때마다 콧구멍을 확장시켜줘야 하며, 숨도 편하게 못 쉰다. 코가 없다. 얼굴에 흰 치아만 보인다 코가 있어야 할 자리에.이곳에는 매일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오고 매일 죽는 아이들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암컷들은 보통 자궁축농증, 유방암 등으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싸우다 물려뜯겨 죽는 아이, 왕따 당해 죽는 아이, 여름에는 일사병, 겨울에는 동상 등으로 죽어나간다. 죽지못해 살아있는 아이들은 싸구려 사료를 배부르게 먹지도 못하고, 피부병, 귀진드기, 간질 등 여러가지 질병과 열악한 환경속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살인적인 더위에 털갑옷을 입고 힘겨워할 아이들. 먹고싶을 때 먹을 수 있고, 비, 바람, 햇빛, 눈을 피할, 편하게 잘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 뿐인데...너무 큰 걸 바라고 있는 걸까?


꽃님이 이야기

2011년 7월 보슬비가 내리는 어느 여름 일요일 어김없이 애린원으로 향했다. 비가 내려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다 결국 출발해 버렸다. 도착하자마자 반갑다고 인사하는 아이들. 많은 아이들을 뒤로한채 꽃님이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꽃님이는 작년 여름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더이상 못키운다며 10살이 넘은 나이에 애린원에 버려진 아이다. 다행히 버려진 날 바로 다른 봉사자분께 입양을 갔지만 사납다는 이유로 다시 애린원으로 보내졌다. 누구의 손길도 거부하고 사납기만 한 꽃님이. 뭔가 더 끌렸다. 눈꼽으로 뒤덮인 눈을 청소하려면 시간이 꽤 걸렸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꽃님이의 눈꼽을 못 떼어줄것만 같아 더 눈길이 갔다.

그렇게 안지 1년, 어느날 갑자기 한달 정도 안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불러도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내가 못간 사이에 죽었나? 어딘가로 입양갔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꼭 데리고 나와서 같이 살고 싶었는데.. 너무 미안하고, 걱정되고, 보고싶었다. 그러다 철조망 너머 뒷다리를 질질끌며 나에게 기어오는 꽃님이를 발견했다. 작은체구에 나이많은 꽃님이에겐 1년동안의 애린원 생활은 너무 혹독했다보다.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눈은 안약을 넣어줘도 노란 고름이 나오고, 뒷다리는 더이상 쓸수도 없고, 이빨은 다 썩어 흔들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다른 강아지가 나에게 달려오면 앙! 하며 화를 내는 꽃님이. 비를 맞으며 앞발로 힘겹게 기어오는 꽃님이를 본 순간 바로 데리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더 있다가는 정말 죽을지도 몰랐다. 봉사를 마치고 꽃님이를 데리고 무작정 병원으로 향했다. 혹시나 나이가 많고 애린원 생활을 오래해 슬개골탈구 말고 다른 병들이 있지는 않나 걱정이 되었다. 13살로 추정되는 꽃님이는 양쪽 뒷다리에 슬개골탈구가 굉장히 심했으며 고관절도 안좋은 상태였다. 다행히 그 외에 심각한 병을 앓고있지는 않았다. 일단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집으로 가는데 걱정이 밀려왔다. 무작정 애린원에서 데리고 나왔지만 강아지를 싫어하는 부모님과 양쪽 슬개골탈구 수술 비용을 생각하니 막막했다.그래도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한달 동안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다시 병원으로 보내졌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안하던 반항을 했다. 일주일 정도 집에 안들어가고 방황을 한 끝에 꽃님이와 같이 살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보호소에서 여러 아이들을 돌봐왔었고, 임보도 많이 해봤지만 유기견 입양이라는 것은 처음이어서 모든것이 서툴고 불안했다. 꽃님이는 애린원에서 가장 예뻐했던 아이고, 병원에서 별다른 병이 없다고는 했지만 혹시 집에 있던 아이들에게 병을 옮기진 않을까 걱정이 됐고, 나도 모르게 거리감을 느꼈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꽃님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게다가 오줌, 똥도 못가렸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기력도 없어 누워만 있던 아이가 점점 건강해지더니 설희와 왕자, 심지어 나 말고 다른 가족들을 공격했다. 특히 아빠만 보면 죽일듯이 덤벼들었다. 지금의 꽃님이는 그나마 배변을 잘 가리지만 여전히 여기저기에 싸고, 죽기 일보직전이었던 아이는 이곳 저곳 시비거느라 바쁘시고,여전히 아빠를 죽이려고 덤벼들고, 점점 가족들의 미움을 사고있다. 어깨는 굉장히 넓고, 다리는 짧고, 이빨도 없고, 혀는 한쪽으로 나오고, 뽀뽀 한번 하면 내 얼굴이 똥냄새로 가득해도 내눈에는 너무 이쁘고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이다. 함께한 시간이 몇 년 안됐지만 힘들었던 것들 다 잊고 남은 시간 행복하게 건강하게 옆에서 있어주고 싶다. 사랑해 꽃님아. 이제 아빠 좀 좋아해줘. / 글과 사진 패션모델 김다원


*김다원은 패션 모델이자 동물복지와 유기견 문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는 실천가이다. 지속적인 동물 보호소 봉사활동과 유기견 입양 독려, 모금 운동 등 동물복지 향상을 위해 애쓰고 있다.











The Way We Wear













Photography Kim HyeonSeong
Styling Lee YoonKyoung
Hair Kim SunHee
Makeup Bae HyrRang
Model Kim WonJoong Kim MinJung
With NEW BALANCE



































<ALL ABOUT DOGS> 4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니다

내 주변의 지인들은 나를 타고난 ‘좋은 엄마(강아지의)’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강아지와 늘 잘 지내온 것은 아니다.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한 것은 열살 때다. 아빠가 어렵게 구해온 뽀얀 크림색 포메라니언이 내 첫 강아지였다. 반려동물은커녕 강아지를 실내에서 키우는 것이 낯설고 ‘견종’이라고는 말티즈, 요크셔테리어가 전부였던, 강아지에 대해 공부할 수단이라고는 ‘애견대백과’ 한 권 밖에 없던 그 시절. 첫 동거는 완전히 참패로 끝났다. 포메라니언이라는 종 자체가 콧대가 높은데다 이미 성견이었던 터라 어린 나를 주인으로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훈련 방법도 전혀 몰랐고. 그 이후로 몇 마리의 강아지가 더 우리 집을 거쳐갔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치와와 잡종이었던 깜보는 집에 있는 모든 가구를 갉아서 외갓집으로 보냈고, 인형 같은 말티즈였던 쁘띠는 너무 짖어서 시골의 작은 아버지 댁으로 갔다. <라이온 킹>의 주인공을 닮아 심바라는 이름을 붙여준 코커 스패니얼은 순식간에 커져 아파트에서 키울 수 없다는 이유로 또 누군가의 집으로 떠넘겨졌다.

너무 많이 실패해서 강아지를 사달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때쯤, 엄마 친구가 이민을 가면서 키우던 개를 맡겼다. 여섯 살 된, 비쩍 마른 치와와였다. 이름이 쭈쭈였는데 그럴듯한 이름으로 바꿔주고 싶어도(고등학생이었던 터라 ‘쭈쭈’라고 부르기 민망했다…) 쭈쭈로 너무 오래 살아서 다른 이름은 알아듣지 못했다. 이미 코가 벗겨지고 이빨도 누렇게 보일 정도로 나이 들고 볼품 없었지만 눈치가 빠르고 말귀도 잘 알아듣는데다 여행을 가면 며칠이고 문 앞에서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충성스러운 개였다. 매번 강아지를 데려와 채 1년도 못 채우고 시골집에 보내다가 개와 공감하는 법을 그 때 처음 배운 거다. 내가 슬프면 옆에 와서 위로하고 즐거울 땐 함께 즐거워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묘한 일이었다. 그리고 사람처럼 개도 늙는다는 것도 그 때 배웠다. 어느 날 좋아하던 의자에 못 올라가고, 눈이 안보이고, 가끔 길을 잃기도 한다는 것도. 생각보다 빨리 이별을 해야 할 날이 온다는 것도. 쭈쭈는 열여덟 살이 되던 해, ‘이번 벚꽃 구경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라고 막연히 생각하던 1월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당시엔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우리가 만난 게 엄청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12년을 같이 살면서 말썽 한번 안 부린 고맙고 심성 깊은 아이 덕에 ‘반려’라는 의미를 제대로 깨달았으니까.

그 후로 모찌라는 한 아이를 병으로 일찍 떠나 보내고 나서 지금의 젤리와 양갱이를 만났다.주변에선 젤리와 양갱이가 예쁘니까, 말썽을 잘 안 피우니까, 덩달아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 고 하지만 내 대답은 일단 ‘No’다. 젤리는 산책을 못하는 날이면 아무데나 오줌을 싸고는 모른 척 한다. 양갱이는 배변은 완벽하게 가리지만 식탐이 많아 땅에 떨어진 모든 것을 입에 넣고 본다. 놀라서 응급실에 데려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퇴근을 하고 나면 강아지 둘이 어질러놓은 집을 치우느라 저녁시간이 정신 없이 지나간다. 강아지를 키우는 건 아직도 어렵다. 나 역시도 완벽한 엄마는 아니라는 뜻이다.

친척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내 강아지들의 마지막 소식을 결국 듣지 못한 게 나는 내내 마음에 걸린다. 두 마리를 품에서 보내고 나니 더욱 그렇다. 어쩌면 유기견으로 어딘가에서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강아지를 키워보라고 쉽게 권유하지 못하는 거다. 나도 여러 번 실패했으니까. 강아지는(고양이도, 물론 모든 반려동물도) 애기 때는 그저 예쁘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모습도 많이 달라진다. 마음을 홀딱 빼앗는 베이비 페이스는 두 달이면 끝이다. 아끼는 신발을 물어뜯어 엉망진창으로 만들 수도 있고 신문지를 깔아놓는다고 저절로 배변을 가리는 것도 아니다. 종마다 고유의 성격도 다르고 때에 따라서는 털도 많이 빠진다. 무엇을 먹여야 하는지, 무엇을 먹으면 안 되는지, 이유 없이 짖을 때는 어떻게 달래는지 배울 것이 너무나 많다. 혼자 산다면 변수는 더욱 많다. 내 경우에도 젤리가 혼자 있던 일년 동안(젤리가 한 살이 되던 해 양갱이를 데려왔다) 수도 없이 마음을 졸였다. 뭘 잘못 먹을 까봐, 심지어 너무 덥거나 추울 까봐 등등에다 혹시라도 시끄럽다고 원룸에서 쫓겨날 까봐 등 별의 별 걱정을 다했다. 점심시간에 집에 들러 젤리가 무사한지 확인 한 게 수십 번. 야근이라도 하는 날이면 죄책감은 더 커졌다. 다행히 젤리는 한번 짖지도 않고 그늘 없이 밝게 자라줬지만 모든 강아지가 그런 건 아니니까. 결혼 할 상대가 강아지를 원치 않아서 친정에 맡기는 경우도 여럿 봤다. 그러니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면 적어도 6개월은 고민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개가 나와 어울리는 성격인지, 산책을 필요로 하거나 자주 털을 빗겨줘야 하는지 생활패턴도 알아보고 말이다. 비싼 옷, 비싼 집보다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대신 평생 내편이 되어줄 든든한 가족을 얻으니 그 정도 노력은 감수하기를. 오늘은 비가 온다. 산책 대신 거실에서 신나게 놀아줘야겠다. 두 마리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게 하기란 쉽지 않지만.

/ 글과 사진 <그라치아> 뷰티 디렉터 양보람











<ALL ABOUT DOGS> 3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유기견의 수는 1년에 10만 마리가 넘는다. 사람들은 키우던 반려견을 산책 중 부주의로 잃어버리고 개가 늙거나 병들면 유기하거나 다른 주인에게 보내고 다른 여러가지 이유로 자신들이 키우던 개와의 인연을 끊는다. 우리나라에서 반려견이 평생을 한 가족과 지내다가 죽는 경우는 12% 내외이며 나머지 88%는 버려지거나 분실되고 다른 가정을 전전하다가 생을 마감한다. 수많은 유기견 중 다시 주인을 찾거나 다른 가정으로 가서 새 인생을 시작하는 경우는 극소수이며 대부분의 유기견은 거리에서 고된 삶을 이어가다가 사고나 병으로 죽거나 구조된 후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안락사 된다. 동물 복지에 대한 법은 아직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열악한 수준이며 새로운 법안이 어렵게 상정된다 해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일쑤다.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 개를 분양하는 산업이 성업 중이며 오로지 새끼를 낳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모견들은 평생 분만을 반복하다가 병에 걸려 죽거나 분만의 기능을 상실하면 버려지고 죽임을 당한다. 반려동물은 아직 생명이 아닌 상품으로 취급되어 학대를 하거나 불합리한 취급을 해도 그에 대한 처벌 수위는 미약한 수준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상업적인 이용은 이와같은 여러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지만 개선의 움직임은 요원하다. 유기견과 동물학대, 기타 동물 복지 문제에 대한 거의 유일한 해결책은 동물의 상업적인 거래를 선진국 수준으로 규제하는 수밖에 없다. 동물을 사지 않고 입양하는 것은 유기동물과 동물 복지 문제를 크게 개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이다.












신발












나와 내 여동생입니다. 그 시절에는 이랬지 저랬지 하는 아저씨같지만 문뜩 사진의 신발을 보니 생각이 나서요. 국민학교 시절 내내 나는 신발이 딱 두켤레씩이었습니다. 하나는 운동화, 또 하나는 교실에서 신는 실내화. 실내화는 교칙으로 정해진 것이니 무조건 있어야 하는 것이었고 실질적으로는 한켤레였습니다. 70년대의 신발이 다 저랬어요. 이름도 말표 신발, 기차표 케미슈즈, 뭐 이런 식. 지금처럼 브랜드 신발을 따로 파는 게 아니라 시장에 가면 신발가게가 있고 그 가게에서 모든 종류의 신발을 다 팔았습니다. 나이키가 처음 들어온게 아마 중학생이었던 1982년 경이었던 것 같은데 신발 한켤레에 만원이 넘는다니 다들 충격을 받았었죠. 나이키를 가장 먼저 신고 학교에 온 친구는 스타가 됐었습니다. 아이들은 나이키를 신고 싶은데 돈은 없고 해서 페가수스니 나이스니 하는 가짜 나이키를 신고 다녔는데 아마 그때부터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짝퉁문화가 시작됐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어쨋든 나는 국민학생 시절 내내 신발이 딱 한켤레 씩이었고 운동화가 구멍이 나거나 밑창이 떨어지면 신발가게에 가서 새 운동화를 사고 떨어진 운동화는 신발가게에 버리고 왔습니다. 지금은 모든 게 너무 풍족한 사회다 뭐 이런 얘기같아 정말 잔소리하는 아저씨같이 돼버렸지만 그때는 나처럼 신발이 딱 한켤레였던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잔소리 같지만 우리는 너무 소비에 중독되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해서요. 기업은 매일같이 우리에게 물건을 사라고 광고하고 방송에서는 사고싶은 물건들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휴대폰은 6개월이 멀다하고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계절마다 유행하는 옷을 사지 않으면 왠지 소외될 것 같은 생각에 불안합니다. 기업과 권력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이 시스템에 갇혀서 수동적으로 소비에 중독되어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사고 또 버리며 살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건 그게 우리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항상 뭔가 살 것을 정해놓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것 같은 착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획일화된 취향과 욕구를 마치 우리의 것인것처럼 착각하면서 자본주의를 살찌워주고 있는 건 아닐까요? 신발이 한켤레 뿐이었던 저 시절이 더 나았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신발장에는 너무 많은 신발들이 채워져있는 건 아닐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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